< 그림  > 완성기 통제영 도심의 공간배치

김상환(전 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도시는 역사적 변천과정에서 일정한 물리적인 연속성과 함께 다양한 사회적 변화상을 담게 되며, 시대에 따라 그 지역의 지배적인 권력과 사회 경제적 요소들의 다양한 관계에 의해 일정한 형태로 구조화된 모습, 즉 도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공간들은 자연적 환경을 바탕으로 일정한 배치와 구조가 이루어지며, 독특한 도시경관(도시풍경, Landscape of city)을 형성한다.

고대와 중세의 도시들은 독특한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양한 도시경관을 지녔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이전의 도시는 대부분 지역에 기반한 귀족이나 토호들의 지배 강도가 심하였고, 그들은 오랫동안 지역의 독자적 발전과정에서 독특한 도시공간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시공간의 개별성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집권체제의 강화로 모든 지역이 중앙에 예속되고, 해당지역에 왕을 대리한 수령이 파견되는 조선시대부터라 할 수 있다. 조선은 주례의 고공기(考工記)를 바탕으로 성리학적 이념을 ‘표상화’하려는 노력, 즉 성리학이 추구하는 이념을 도심의 구조와 공간 배치에 드러내고자 하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통영의 도시화 과정은 조선시대에서도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여타의 군현지역과는 달리 군사적 성격의 군영으로부터 발전된 도시이자, 새롭게 만들어진 계획도시였다는 점에서 통영의 도시사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조선시대 통제영 공간의 계획적인 분할과 공해(公廨:관청)의 설치과정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도시건설과정을 잘 보여주며, 숙종대 통영성 건설을 거쳐 영조대 전후의 통제영은 전형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통제영 건설과정은 편의상 숙종대를 전후해서 3시기 정도로 나눠 볼 수 있다. 그 시기는 먼저 선조 35년 1602년 백화당과 세병관을 건립하면서 시작된 ‘건설기’, 숙종 4년부터 시작된 통제영성 축조와 군문으로서의 면모를 완벽히 갖추기 시작하면서 영조대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완성기’, 그리고 본격적인 도시의 성격이 변화되는 영정조 이후의 ‘확장기’ 등으로 구분된다. 이는 통제영이 갖는 군문의 위상이나 성격변화는 물론이고, 도시로서의 ‘통영’의 변화와 직결된다.

먼저 ‘건설기’ 통제영은 백화당과 세병관을 비롯해 선조 36년, 37년에 걸쳐 통제영의 운영·유지에 필요한 공해 건설을 중심으로 단출하지만 기본적인 공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됐다. 이시기 통제영 건설의 특징은 크게 군문으로서의 대략적인 공해시설의 구축, 통제영직할의 우후영체제의 정비, 그리고 각종 창고 및 재정시설의 정비 등이다. 특히 통제영 건립과 함께 가장 주목되는 영하 각처에 외창(外倉)들을 건립하여 재정확보에 주력하였다. 통제영 재정운영의 근간이 되는 이러한 외창이 상대적으로 빨리 갖추어지면서 삼남제일거진(三南第一巨鎭)으로 발전해 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재정문제는 대체적으로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고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군본영으로서의 위용은 완비하지 못하였다. 이는 전후 복구과정이 더디었던 당시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통제영의 ‘완성기’는 숙종 4년 이후의 통영성 축조와 우후영(虞侯營)을 비롯한 각종 군문의 중심 관청의 보강이 이루어졌던 시기이며, 비로소 중세도시의 모습을 완성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통영성은 4성문과 남문루, 동문루, 서문루 등 성문위의 3개 누각이 만들어졌고 동암문, 남암문이 갖추어졌다. 이어 숙종 8년 통영성의 북쪽에 원문(轅門)을 세워, 관문 출입을 장악하였다. 통제영의 지리적인 조건을 감안하면, 육지에서 통제영으로 향하는 원문은 통제영의 관문이자 외성역할을 하였다. 전체적인 성의 윤곽이 완성된 이후 통영성의 위용을 내세우고 장수들의 지휘소 역할을 할 수 있는 장대(將臺)들이 마련되었다. 이들은 각기 통영성내의 산봉우리위에 설치되어 통영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영성 밖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시설이 되었다. 통영성이 성가퀴(城堞)와 성장청(城長廳), 산성청(山城廳)을 갖추어지며 완성된 것은 숙종 34년으로 약 30여년의 세월을 거쳐 비로소 통제영의 위용을 내세우는 통영성의 건축이 완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는 우후영을 비롯해서 새롭게 분화되어 만들어진 각종 지휘소들이 다양하게 건설되었으며, 각종 군문관청을 비롯한 군영의 다양한 창고들도 마련되었다. 국방력 강화에 힘을 쏟은 숙종대에 이루어진 이러한 집중적인 건설과정을 통해 통제영다운 면모를 갖추며 지역을 지배하는 중세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로서 도시 ‘통영’의 중세적 모습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완성기 통제영 도심의 풍경은 다음의 < 그림 1 >과 같은 공간배치를 보여준다. 통제영이 자리잡은 두룡포의 지세는 여황산을 정점으로 차츰 낮아져 바다에 이르며, 산 정상의 북포루와 동,서의 동포루 서포루(▲)는 성의 높은 지대에 설치되어 외부의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동쪽의 남망산과 중영의 船所가 있는 서쪽의 바닷가가 통제영 입구를 수책(水柵)으로 막고 있어 바닷길로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자연적 입지조건을 보여준다. 통영성의 4대문(◌)은 선소(船所)로 통하는 남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부노출이 심하지 않은 자연적 지형의 골짜기를 통하도록 하였다. 통영성은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축조하여 지형적으로 매우 좁고 왜소해 보일 수 있는 통제영의 모습을 오히려 효율적이고 웅장한 모습으로 보이게 군문으로서의 표상을 강조하였다.

도로는 통제영 내부의 지형적인 형세를 바탕으로 위계적 배치를 이루었다. 주 간선도로는 남문으로 들어와 세병관에 이르며, 남문으로 들어서면 좌우의 관청을 통과해 세병관에 이르기까지 군사도시의 위용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지형의 영향을 받은 동서간의 2개의 도로는 통제영의 위계를 나누는 중요한 구분선이 되어 상부는 왕권을 상징하고 통제영의 중심이 되는 객사인 세병관(A지역)를 중심 각종 업무시설들로 배치되었다. 오른쪽(B지역)으로는 통제사의 내아(內衙)를 비롯, 운주당(運籌堂)과 경무당(景武堂), 그리고 각종 내아의 후원격인 시설물들(I지역)이 갖추어졌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통제영의 다양한 업무들이 논의되는 백화당(百和堂)이 위치하였다. 상층부는 통제영을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며 대표적인 통제영의 표상이었다.

그 아래에는 동서로 횡단하는 도로들 사이로 우후영을 비롯한 중간 관리직청이나 통제영의 보조시설의 중간위계의 관청들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망일루(望日樓(洗兵門)) 동쪽(D지역)으로는 다양한 작청(作廳)시설과 군문각청이 북문과 동문을 따라 그 사이로 다양하게 건립되어있으며, 서쪽(C지역)으로는 우후영의 각종시설과 일부 관문들이 일부의 민가와 혼재되어 설치되었다. 그리고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르는 길 위쪽(E지역)으로는 통제영의 하부직책과 노방(奴房), 사령청(使令廳) 등의 잡색층의 관청과 감옥(軍牢廳)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하부위계 공간을 이루고, 남문에서 세병관으로 통하는 남북간선도로 서쪽(H지역)으로는 각종의 내창(內倉)이 민가와 함께 존재하였다.

통제영의 특징을 보여주는 선군관련 각청과 시설들은 남문을 지나 성외 바닷가인 강구(江口)의 북단에 집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G지역). 통영성 건설과 함께 만들어진 수항루(受降樓)는 강구안의 통영 성루라고 할 만한 통영성내의 포루들에 대응하여 (남포루)南鋪樓라 할만하며, 각종 수군관련 시설로 통하는 누각이다. 수항루를 중심으로 강구안으로 각종 수군시설이 배치되어 통제영의 선단을 이루며, 선박의 건조와 수리, 기타 선박과 관련된 일들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수항루를 중심으로 건물들이 담장처럼 에워싸고 있고, 좌우파수(左右把守)의 수책(水柵)은 통제영의 앞바다인 함대의 정박처인 강구를 마치 성처럼 둘러싸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보인다.

통제영의 이전(移轉)이후 군과 민의 모호한 혼재는 통제영 확장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군문영역을 민간의 생활영역과 구분하여 군문으로서의 위상과 폐쇄성을 높이기 위한 조처가 바로 통영성 건설의 또 다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통영성 건축을 계기로 성내부와 외부의 토지 이용의 개념이 나뉘어졌으며, 이는 전통적이고 중세적인 권력에 의한 공간생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조치는 결국 城外 기존 주거지를 포함한 새로운 거주공간을 개발하게 되었고, 원문에서 성 밖 동문에 이르는 길목에 시장을 형성하였다. 시장은 18세기 이후 K지역(지금의 중앙시장, 강구안)으로 옮기게 된다.

한편 이러한 통제영의 공간배치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위계질서상 상층부에 해당되는 F지역 공고(公庫)를 비롯한 각종 ‘공방’의 존재이다. 세병관 서쪽으로 많은 공방들이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었다. 통제영의 공방은 한산도에 머물던 초기 통제영시기부터 통제영의 군필품들을 생산하고 진상물품을 조성하기 위한 기능을 해 왔다. 통제영 공방이 처음부터 이 지역에 존재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18세기 이전부터 공방은 그 성격이 조금씩 변화되면서 통제영 내부 공간의 배치에 있어 중세적 표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 배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통영공방은 16세기 이후 관수공업의 퇴조와 민영수공업의 확대라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해 19세기 말 폐영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확대되어 사공장(私工匠)을 다수 고용할 정도로 통제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컸다. 이는 통제영 군영유지에 필요한 각종 제품의 생산이나 군무기의 유지와 생산이라는 통제영 공방이 가지는 본연의 임무를 벗어나 통영갓이나 나전칠기와 같은 고급제품을 만들어 상업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사적인 성격으로의 변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지니는 것이다. 통제사나 군영 지휘자의 관할하에 상층위계층이라 할 수 있는 F지역에 공방이 존재한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처럼 병영도시로서의 통제영의 정치적 상징성은 성내의 세병관과 성외의 수항루,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통영성(원문성 포함)으로 표상화 되었고, 철저히 권력에 의해서만 공간생산이 이루어지는 시대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세병관을 정점으로 하는 상 중 하의 위계질서는 정치적인 상징성을 위한 공간의 표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수항루와 남문에서 세병관으로 이르는 주간선도로는 통영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통영의 군사적 기능을 잘 반영하며 각각의 공간을 독립시켰다